독서

봇을 돌리다 다시 꺼낸 『돈의 심리학』

2026.07.26 『돈의 심리학』 — 모건 하우절 ★★★★

이 책을 세 번 읽었습니다. 2021년에 다들 돌려보던 시기에 한 번, 2022년 하락장에 얻어맞고 나서 한 번, 그리고 올해 자동매매 봇으로 손실을 보고 나서 또 한 번.

첫 독서는 별 쓸모가 없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고는 고점에서 기술주를 샀으니까요. 같은 문장이 두 번째 읽을 때는 교훈이 아니라 규칙으로 읽혔습니다. 책이 바뀐 게 아니라 제가 그 사이에 돈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책인가

스무 편 남짓한 짧은 글의 묶음입니다. 모델 포트폴리오도, 수식도, 백테스트도 없습니다. 저자는 펀드매니저가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이고, 책의 주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입니다. 무엇을 사느냐보다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결과를 더 크게 좌우한다.

종목이나 비중에 대한 답을 기대하고 펴면 실망합니다. 반대로 “나는 왜 매번 바닥에서 파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면 맞는 책입니다.

남은 것 세 가지

복리는 수익률이 아니라 시간의 함수다. 저자는 버핏을 예로 듭니다. 버핏의 연평균 수익률은 훌륭하지만 인간을 초월한 숫자는 아닙니다. 초월적인 건 기간입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시작해 70년 넘게 굴렸고, 순자산의 대부분은 예순다섯 이후에 쌓였습니다. 요점은 천재적인 종목 선택이 아니라 사슬을 끊지 않는 것입니다.

변동성은 벌금이 아니라 수수료다.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자주 인용하는 문장입니다. 시장이 20% 빠지면 내가 뭘 잘못해서 벌을 받는 기분이 듭니다. 아닙니다. 그건 주식이 채권보다 더 주는 대가로 청구하는 요금입니다. 주가가 완만하게 움직였다면 수익률도 채권만큼이었을 겁니다. 하락장은 피해야 할 사고가 아니라 지불해야 할 비용이라는 관점 전환이 실제로 도움이 됐습니다.

합리적인 것보다 견딜 수 있는 것. 수학적으로 최적인 포트폴리오라도 50% 하락을 못 버티고 바닥에서 팔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끝까지 들고 갈 수 있는 어중간한 포트폴리오가, 도중에 던져버린 최적 포트폴리오를 이깁니다. 제가 해외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이유가 이겁니다. 미국이 계속 이길지 확신이 없고, 반대도 확신이 없습니다. 어느 쪽이 틀리든 잠은 자야 하니까요.

자동화가 심리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았다

제가 매매를 자동화한 동기 중 하나가 이 책이었습니다. 논리는 단순했습니다. 문제가 내 행동이라면, 행동을 빼버리면 되지 않나. 규칙을 코드로 옮겨두면 공포도 탐욕도 개입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절반만 맞았습니다. 올해 급락장에서 봇들을 복기해 보니, 손실의 큰 부분은 방어 로직을 넣지 않은 봇들에서 나왔습니다. 왜 안 넣었을까요. “적립식은 장기로 보면 안전하니까 손절이 필요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코드가 아니라 제가 쓴 가정이었습니다. 자동화는 실행에서 감정을 제거해 주지만, 그 규칙을 설계하는 순간의 낙관까지 제거해 주지는 않습니다. 심리는 실행 단계에서 빠져나가서 설계 단계에 그대로 숨어 있었습니다. 이때 손본 내용은 따로 정리해 뒀습니다.

책의 표현을 빌리면, 저는 수수료를 안 내는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중에 한꺼번에 청구되도록 미뤄둔 것이었습니다.

아쉬운 부분

“이유가 무엇이든 저축하라”는 장은 너무 무릅니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조언이지만, 목표 금액이 없는 저축은 대체로 “쓰고 남은 돈 저축”이 됩니다. 실제로 자산을 만든 사람들은 대부분 구체적인 숫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자도 다른 장에서는 목표 설정 문제를 날카롭게 다루는데, 이 장만 유독 물렁합니다.

철저히 미국 시각입니다. 세제와 계좌 이야기는 한국 독자에게 그대로 적용되지 않고, 사례도 대부분 미국 인물입니다. 행동에 관한 원칙 자체는 국경과 무관하게 통하지만, 구체적인 예시는 각자 번역해서 읽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 계좌를 아직 안 연 사람 — 투자를 시작하기 전에 읽는 게 낫습니다. 가장 어려운 일은 종목 고르기가 아니라 폭락장에 안 파는 것이고, 기대치를 미리 맞춰두면 그때 덜 흔들립니다.
  • 이미 한 번 크게 실수한 사람 — 바닥에서 팔았거나 유행 따라 몰빵했던 사람에게는,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이름 붙여 주면서 동시에 용서해 주는 책입니다.
  • 숫자와 백테스트를 원하는 사람 — 틀린 책입니다. 여긴 에세이지 모델이 아닙니다.

한 줄 요약

자산 배분보다 내 행동이 결과에 더 큰 지렛대다. 종목 선택에서 남들보다 나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만, 바닥에서 안 파는 일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240쪽 내내 이 한 문장의 변주입니다.

읽은 투자서 중에 가장 자주 빌려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손실을 볼 때마다 다시 펴게 됩니다.

#투자#행동경제학#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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